그림을 그리기 위해 색연필을 깎는다. 내가 원하는 뾰족함의 정도를 생각한다. 그것은 지나치게 깎여 너무 뾰족해서도 안 되고 덜 깎여 뭉툭해서도 안 된다. 선을 그릴 때 알맞은 뾰족함이 있고, 색을 칠할 때 알맞은 뾰족함이 있다. 뾰족함을 느끼는 예민함은 색연필을 깎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서 체득된다. 가끔 색연필을 깎는 행위가 구도자의 수행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뒤통수에서 풍경 소리가 들려오고, 바위에 바르게 앉아 수련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전동 연필깎이는 힘 조절과 강약 조절을 수련한다. 지나치게 강한 힘을 주어 깎으면 끝은 뾰족하게 잘 깎이지만, 심이 얇게 깎여 종이에 닿는 즉시 부서져 버린다. 게다가 한 자루에 삼천 백 오십 원 하는 색연필 살이 깎여 나가는 게 아깝다. 전동 연필 깎기는 중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