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기 위해 색연필을 깎는다. 내가 원하는 뾰족함의 정도를 생각한다. 그것은 지나치게 깎여 너무 뾰족해서도 안 되고 덜 깎여 뭉툭해서도 안 된다. 선을 그릴 때 알맞은 뾰족함이 있고, 색을 칠할 때 알맞은 뾰족함이 있다. 뾰족함을 느끼는 예민함은 색연필을 깎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서 체득된다. 가끔 색연필을 깎는 행위가 구도자의 수행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뒤통수에서 풍경 소리가 들려오고, 바위에 바르게 앉아 수련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전동 연필깎이는 힘 조절과 강약 조절을 수련한다. 지나치게 강한 힘을 주어 깎으면 끝은 뾰족하게 잘 깎이지만, 심이 얇게 깎여 종이에 닿는 즉시 부서져 버린다. 게다가 한 자루에 삼천 백 오십 원 하는 색연필 살이 깎여 나가는 게 아깝다. 전동 연필 깎기는 중심을 잘 맞추어 깎아야 한다. 색연필 심이 치우침 없이 깎여 균형이 잘 맞아야 한 번에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할 수 있다. 심이 치우치면 뉘어서 너른 면을 칠할 때 사용할 수 있지만, 예리한 맛이 없어진다.
수동 연필깎이로 손목을 수련한다. 연필깎이 구멍 속에 색연필을 스르르 밀어 넣고 손목을 비튼다. 비틀고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색연필 심을 둘러싼 나무 몸통이 얇게 저며진다. 연필깎이 칼의 날이 선 경우, 나무가 부드럽게 깎여나간다. 그러나 칼날이 무디면 색연필을 깎다말고 덜커덩 거리며 손목에 무리를 준다. 피곤하고 시큰거리는 손목은 온찜질을 하고 잘 쉬어준다. 다음 날 같은 강도의 작업에도 무리를 느끼지 않는다. 도리어 오랜 시간을 쉬었다가 작업에 들어가면 탈이 난다. 적당한 무리가 손목을 강화시키는 훈련이 되는 것이다.
색연필이 짧아지면 연필 깎기로 깎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몽당 색연필은 커터 칼을 사용한다. 플라스틱 재활용 트레이를 깔고 색연필의 나무 몸통을 둘러가며 뭉툭하게 깎아낸다. 깎여나가는 색연필을 바라보며 명상 수련에 들어간다. 현실과상상의 가운데 공간에 머문다. 왜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나에게 혹은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저 헛짓이 아닌지. 의문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철학과 현타 사이를 오가며 묻고 답한다. 어떤 날엔 답을 하고, 어떤 날엔 했던 답도 지워진다. 어떤 질문은 그냥 놔둔다. 뭉툭하게 깎인 몽당 색연필은 홀더를 끼워 배경을 칠할 때 사용한다.
색연필을 깎다가 열반에 올랐다는 소문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작가의 독자적인 색을 드러내는 경지가 열반이라면 색연필을 깎는 일은 수련의 일부분이다. 요령을 깎고, 행동을 깎고, 생각을 깎아 낸다. 잘 깎이는 날이 있는가 하면, 중심을 잃어 탈이 나는 날도 있다. 다음 날 종이를 펼치고 색연필을 깎는다. 어제의 일은 담아두지 않는다. 멀리서 풍경 소리가 들린다. 어느샌가 바위 위에 앉아있다. 지나치게 뾰족하지도, 뭉툭하지도 않은 예리한 맛이 살아있는 뾰족함을 기대하며 색연필을 깎고 또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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