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그은밑줄

(오블완)환상 속에 자연

밑줄 긋는 리드로 2024. 11. 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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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소리가 축축한 밤공기를 가른다. 청명한 소리다.

너무 가까이 들린다.

귀뚜라미 소리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건 괜찮다.

하지만 귀뚜라미가 들어오는 건 괜찮지가 않다.

 

한 때, 나는  자연에서 살기를 꿈꿨다.

파란 하늘, 초록색 풀, 우거진 숲.

눈까지 시원한 그곳에 작은 집을 짓고 살고 싶었다.

밭 일도 곧 익숙해지겠지. 옥수수, 감자, 파를 키우는 거야.

수박, 딸기 비닐하우스도 작게 만들고,

더운 비닐하우스를 나오면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겠지.

상상 속 자연은 싱그러웠다.

 

얼마 전 친구들과 근교로 바람 쐬러 나갔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푸른 곳만 찾아 거닐었다.

그러다 작은 연못을 발견했다.

우리 둘은  흥분된 마음으로, 멀리 있는 다른 친구까지 소리쳐 불렀다.

다른 친구는 자연은 불편한 거,라고 말하는 친구였는데

기꺼이 연못까지 와주었다.

우리 셋은 활짝 웃으며 이리저리 초록과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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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모기떼가 블랙호크처럼 공격을 퍼부었다.

새카만 모기 때가 몰아쳤다.

볼때기, 눈두덩, 종아리, 팔, 발가락 사이까지 마구 뜯어 먹혔다.

으악.

우리 셋은 허둥지둥 도망쳤다.

한 친구는 발을 접질렸고, 나는 진흙에 미끄러졌다.

차 내부까지 쫓아온 모기와 2차전을 하다 그곳을 도망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물린 곳이 계속 따가웠다.

 

우리 집은 3층이라 귀뚜라미가 뛰어오를 일은 없지만

베란다 방충망을 단단히 닫는다.

내가 생각하는 자연은 인공의 정원이며, 적어도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결국 나는 인공의 자연을 좋아한다.

어쩔 수 없이, 자연에 대한 환상은 잠시 넣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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